2007년 6월 11일

한참을 신경끊고 살았는데 올해 대종상이 좀 시끌시끌한 모양이더라.

대충 들어보니 김아중이 여우주연상 받은 거 가지고 이런저런 말이 많더만.
조금 뒤져보니 신인상 갖고도 또 말이 많고.
심지어는 김아중이 <미녀는 괴로워>에서 불렀던 <마리아>를 아이비가 불렀는데 못불렀다, 이런 것까지도 말이 많더라.
대종상이 스폰서를 잘못 물었나 왜 이런 소리들이 나오는 건지.
(옛날, 잠깐, 삼성에서 대종상 스폰서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제법 유명하신 영화배우 두 분이 시상하러 나와서 쓸데없는 삼성 예찬 – 충무로를 비춰주는 세 개의 별 어쩌구 – 을 늘어놓던 모습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하여튼, 각설하고,
결정적으로 내가 이런저런 시상식에 죄다 관심 끊고 살기 시작한 계기가 뭐냐하면,
영화배우 지들도 그 시상식에 별 관심이 없어뵈더라는 거다.
따지자면 그게 시상식의 권위, 뭐 그런 문제라고 할 수도 있겠는데,
시상식의 권위라는 건 결국 상받는 넘들이나 좋다는 얘기지 상하고 아무 상관없는 (후보에도 못오른) 넘들이야 당연히 관심없다는 얘기가 되잖나. 그러니까 그건 아니고.

예를 들어 아카데미시상식 같은 것만 봐도 지가 상을 받건 못받건
굵직굵직한 영화배우/감독들이 쫙 빼입고 레드카펫 다 밟아주면서 하나의 축제로 그 시상식을 즐겨주질 않던가.
(뭐 아예 그런데는 관심끊고 사는 몇몇 영화인도 있긴 하지만)
그런데 우리나라 영화시상식이라는 건 그런 축제라는 느낌 전혀 없고
언젠가 신문을 읽어보니 주최측에서 객석에 앉아줄 배우들을 섭외하느라 진땀을 흘릴 정도라고 하니
이건 뭐, 주객이 전도됐다 말이지.

게다가 이런저런 시상식들이 TV로 방영돼야만 수지가 맞는 구조라서인지 (근데 시상식도 수지 맞춰가며 하는 겐가)
꼭 방송국 하나씩 물고 생중계를 해대던데
(대충 대종상은 SBS, 청룡상은 KBS에서 중계하는 것 같더라. MBC야 지들이 대한민국영화대상이라는 걸 만들었으니 그거 중계하고)
TV에서 볼거리를 제공해야되다보니 무조건 배우들 위주로 시상식을 진행한단 말이다.

무슨 소리냐 하면, 아카데미시상식 같은 거 보면
일반사람들은 잘 알지도 못하는 영화 의상담당, 음악담당, 각본담당한 사람들한테도 상 일일이 줘가면서
그 사람들 수상소감 다 말할 기회 준단 말이지.
근데 우리나라 시상식들(요즘 좀 바뀌긴 했다만) 보면
의상 음악 미술 조명 이런 부문에 상 주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안주는 시상식도 많고)
혹 상줘도 수상소감 같은 거 생략하기 일쑤였다.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배우들의 경우는 수상소감 꼬박꼬박 다 듣지만.
게다가 배우들에게 주는 상이 주연상 조연상으로는 모자라다 싶었는지
신인배우상, 까지는 내가 이해하겠다만
요즘은 무슨 스타상, 인기상 이런 걸로 배우들을 아예 떼거리로 상을 주는 짓도 한다더라.
이게 무슨 영화인의 축제냐. 영화배우들의 축제지.
(막말로 이런 식이면 감독조차 소외되는 거 아닌가)

내 생각에는
정말 영화인의 축제로 남고싶은 영화시상식이 있으면
일단 TV 생중계부터 끊고
(괜히 TV 중계하니까 볼거리 많이 넣을라고 중간에 이상한 쇼도 하고 그러더라)
시청률 그따위거 의식하지말고 정말 영화판에서 고생하는 사람들한테 골고루 상주는 것부터 시작해라.
잘나가시는 귀한 배우들 참석할까말까 전전긍긍하지 말고
아 올테면 오고 말테면 말아라… 우리는 그냥 시상 발표나 할테니 와서 받던지 말던지.
이런 정신상태가 좀 필요하지 않겠나 싶은 거다.

이래저래 TV가 여럿 버린다 싶은
시대가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