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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학생시절] 사회적응기

1997년 12월 20일

제대하고나서 복학하니 정말 “아저씨”가 되어있었다. 가장 뼈저리게 느껴진 점은, 군대 가기 전에는 지나가다 뭘 떨어뜨리면 따라오던 여자가 아가씨면 “저기요…”라고 불렀고, 아줌마면 “학생…”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군대 갔다왔더니, 얼굴에 예비군이라고 써붙여놓지도 않았는데, 아가씨고 아줌마고 죄다 “아저씨!!”라고 불렀다. 비참한 인생이다.

군대 말년쯤에 “열전! 달리는 일요일”과 비슷한 프로그램 (포맷은 같은데 다른 이름이었다)을 일욜날 보다가 우리 시립대학교 제어계측과가 나오는 걸 보았다. 자는 놈들 다 깨워서 고참 후배들이 나와서 뛰는데 응원하라고 협박했다. 과는 다르지만 학교는 후배잖아. 어쨌든 거기서 이휘재라는 (개그맨과 이름이 같지만 전혀 딴놈임. 서세원 비슷하게 생겼다) 녀석이 무지하게 설쳐대는 걸 보구선 그냥 잊어먹고 제대했다. 제대하구 나서 재시립대 남강동문회에 쭐레쭐레 나갔다가 나 군대간 사이에 입학했다는 이휘재라는 후배하고 인사했다. 그놈이 그놈이었다.

3학년 복학하고 첫 축제날, 내가 심심풀이삼아 사주를 봐준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박 모 후배가 나에게 동업을 제의했다. 나는 농담처럼 승락했는데, 박 모 후배가 당일 진짜로 돗자리와 (사주팔자에는 필수품) 각종 광고 문구가 적힌 포스터 (기억나는 것만 옮겨보면, “돌아온 빽도사” “배봉산(학교 뒷산)에서 50년 수련” 등등)를 만들어왔을 땐 어지간한 나도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뭐 우쨌거나 후배의 충정을 생각해서라도, 복채도 싸게 건당 천원 궁합 이천원을 받아가며 ‘열린마당’에 돗자리 풀어놓고 장사를 시작했다. 한 네시간 장사했나? 주 고객들은 평소에 나한테 꽁짜로 보던 과 선배 후배 동기들이었고, 괜히 지나가다가 친구들에게 붙잡혀온 아무리 봐도 우리 학교 학생이 아닌 어린 커플이 기억에 남는다. 탈춤반의 어떤 여학생은 나한테 부적 팔러왔다가 내가 사주 봐주는 꼴을 구경하더니 부적 두개 그냥 주고 궁합까지 봤다. (이쁘장하게 생겼던데 궁합을 본다는 말에 그만… 아까비) 벌이는 괜찮았는데 그날 손님 몰아오느라고 고생한 동기들 술도 변변히 못사줬다. 언젠간 한턱 내야겠다.

3학년 2학기에 교내 공대 체육대회가 있었다. 뭐 복학생이고 뭐고 수업 죄다 제껴놓고 운동장에서 으샤으샤 하고 있었는데, 중간에 모두 나와서 줄다리기를 하래나 그래서 운동장으로 우르르 내려왔다. 세상에 쪽수로 보나 등빨로 보나 공대에서 건축과 아니면 토목과 아닌가. 첫판에서 우리 상대가 된 정밀기계과(어설픈 기계과?)가 쉽게 나가떨어지자, 두번째 판에서 우리는 남자 다 빠지고 여자만 내보내는 객기를 부렸다. 뭐 져도 세번째 판에서 쉽게 이길 테니까. 정밀기계과 놈들은 여자가 없기 때문에 쪽팔림을 무릎쓰고 건축과 여자들과 줄다리기를 해야했다. 혹시나 해서 등빨 좋은 이 모군과 노 모군이 뒤에서 줄을 잡아주긴 했지만, 우리는 정말 여자애들이 이겨버릴 거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