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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미술관 리움] 앤디 워홀 전시를 다녀와서

2007년 5월 5일



어떤 건물인가?

지난 목요일, 회사 사람들하고 삼성미술관 리움(Leeum)에 답사(?) 혹은 견학(?)을 다녀왔다. 건축과를 다니면서 좋았던 점 중 하나가 무작정 싸돌아다니면서도 건축물 구경하고 사진찍으면 그게 다 공부가 되는 거라고 우길 수 있는 거였는데, 설계사무소로 적을 옮긴 이후 좋아진 점 중 하나도 이렇게 업무시간에 휙 놀러나가도 대충 답사나 견학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거랄까.

사무실이 있는 용산역 근처에서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리움미술관은, (정확한 주소는 한남동 747-18. 팜플렛에 그렇게 씌여있네) 한국 전통미술을 전시하는 MUSEUM 1, 현대미술을 전시하는 MUSEUM 2, 기획전시가 주로 열리는 삼성아동교육문화센터 등 모두 3개의 건물로 이뤄져있다. 현재 삼성아동교육문화센터에서는 <앤디 워홀 팩토리> 전시가 열리고 있는데, 이번 견학(?)의 목적이 바로 <앤디 워홀 팩토리> 관람이었다.

하지만 여기는 건물 이야기 하는 공간이므로 앤디 워홀 이야기는 더 이상 없다. (전시품 사진도 못찍게 해서 기억나는 것도 없다) 건물 이야기 하자스라. 비록 세 개의 건물이 각각 다른 설계자(모두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들이다)에 의해 따로따로 지어지긴 했지만, 문화센터 건물과 딱 붙어있는 출입구로 들어오면 MUSEUM 1과 MUSEUM 2로 모두 연결되는 지하로비가 있어 하나의 건물처럼 연결돼있다. 로비 중앙에 둥근 천창이 하나 있어 올려다보니 MUSEUM 1의 계단실로 이용되는 공간과 통하던데, 앤디 워홀 전시만 둘러보고 상설전시는 볼 계획이 없었으므로 (정확히는 앤디 워홀 전시회 표를 끊으면 상설전시까지 다 볼 수 있을 거라고 착각하고 있었으므로-_-) 저 공간을 직접 둘러볼 수는 없었다.

MUSEUM 2 쪽으로 들어가는 출입구를 통해 이상한 전시품이 보이길래 사진이나 한 장 찍으려고 카메라를 들이댔더니 안내하는 여직원이 말없이 손으로 엑스자를 그리며 막아서더라. 카메라로 확 면상을 찍어버릴라다가-_- 참았는데, 세계적인 미술관 루브르나 오르세에서도 사진 찍는다고 뭐라는 사람 없더라만 여기는 왜 이 지랄인가.

하여튼 사진 촬영이 허락되는 앤디 워홀 전시장 입구까지만 열라 사진 찍어대고, (5년전에 산 똑딱이를 가져갔더니 사진 별로 잘 나온게 없다) 한 시간 정도 전시품을 감상한 후 밖으로 나와 본격적인 건물 구경-_-에 들어갔다. 딱 보면 세 개의 건물이 유리, 벽돌, 스틸의 각각 다른 주재료를 사용해 건축되었음을 알 수 있으며, 세 건물을 어우르는 데크는 나무와 자갈이라는 자연소재를 써서 건물들과는 또 다른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잡아주고 있다.

데크에는 간혹 야외설치미술품이 전시되곤 하는 모양인데, 현재 데크에 설치되어있는 (아마도 상설로 전시 중인 것 같은) 미술품은 리움을 다녀온 사람들은 다들 기억하는 거미 조각이다. 청동으로 만든 것 같은 큰 거미 조각과 그보다 조금 작게 만들어진 또 다른 거미 조각 두 개로 이뤄진 이 미술품의 제목은 <엄마>란다. 루이스 부르주아라는 작가의 작품인데 큰 놈은 높이가 10m 정도 된다고 한다.

또한 리움미술관 입구에는 미야지마 다츠오가 설치한 <경계를 넘어서>라는 설치미술이 전시되고 있다. (전시…라고 할 수 있을까나) 바닥을 목재로 깔고 그 사이사이에 LED로 1부터 9까지의 숫자를 각각 다른 속도로 세어가는 장치인데, 어떤 짖궂은 녀석이 지 여자친구한테 이거 발로 밟으면 숫자가 바뀌는 거라며 속이고 있더라. (여자애는 정말 바뀌나 싶어서 열심히 밟고 있고)


건물 이야기를 해야되는데 쓸데없이 미술품 이야기를… 하여튼 다시 건물 이야기로 되돌아가서, MUSEUM 1은 한국고미술을 전시하는 공간답게 설계자 마리오 보타가 한국의 도자기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었다는 구라를 치고 있다. 왜 구라라고 하냐 하면 마리오 보타의 건물을 보면 다 이렇게 생겼거던. (못믿겠으면 강남교보빌딩을 봐라) 역원추형 매스부분은 아까 지하로비에서 봤던 둥근 천창을 포함하고 있고, 이 천창을 통한 빛이 지하로비로 내려오는 느낌이 상당히 좋다.


MUSEUM 2는 프랑스 출신 장 누벨이 설계한 작품으로, 지하 깊은 곳에서 올라온 나무 뒤로 숨은 녹슨 철판과 유리 건물이라는 독특한 컨셉을 갖고 있다. 내부의 전시박스도 모두 녹슨 철판이라니 삼성답지않게 쪼잔하게 돈을 아끼려는 의도가…(아닌가) 주위 조경도 공사 중에 나온 바위돌을 쪼개서 철제 프레임에 담은 뒤 쌓아버린 독특한 담벼락과 그 담벼락에 둘러싸인 지하정원이라는 요상한 스타일이다. 얼른 지나치면서 보면 구질구질하고 오래된 건물처럼 보이지만, 그게 설계자의 컨셉이라니 어쩌겠나.


삼성아동교육문화센터는 한때 우리 동기 최모양과 돈독한 관계(?)였다는 소문이 도는 렘 쿨하스가 설계한 것으로, 외부로는 실질적인 리움미술관의 얼굴 역할을 하면서도 자기 자신을 강하게 드러내지 않으며, 내부로는 각 전시관의 출입구 역할을 하면서 자신만의 독특한 전시공간을 별도로 안고 있다. 앤디 워홀 전시를 여기서 했기 때문에 내부를 제대로 둘러본 건물은 여기밖에 없는데-_-, 지하의 전시공간 외에도 에스컬레이터로 연결된 블랙박스(어허, 옛날 학교 다닐 때 스터디그룹 이름이었는데)를 전시공간으로 활용하여 독특한 경험을 하게 해준다. 사진을 못찍게 한 것만 빼면 괜찮았을텐데 말이지.



어떻게 지어졌나?

삼성그룹에서 돈지랄한 거지 뭐. 미술품도 미술품이지만 저 각각의 건물을 설계한 사람들 면면을 봐라. 마리오 보타라면 아마 지금 활동하는 건축가들 중 손가락에 꼽힐만한 인물이고, 장 누벨은 프랑스에서 예술계의 공헌을 인정받아 기사 작위를 받은 인물이다. 렘 쿨하스는 건축계의 노벨상이라는 프리츠커상을 2000년도에 수상한 인물이고. 도대체 설계비를 얼마나 들였을런지 원. (내 돈 아니긴 하다)

하여튼 리움이 개장한 것은 2004년 10월이고, 그 이전에도 삼성문화재단은 호암미술관이나 로댕갤러리 같은 것을 운영하고 있었다. 아시다시피 호암은 고 이병철 회장의 호인데, 아들인 이건희 회장도 자기 이름을 붙인 미술관을 하나 갖고 싶었는지, 기왕 하는 김에 아예 대대손손 변치 않을 이름을 짓고 싶었는지 자기 성인 이(Lee)에 미술관에 붙이는 -움(um)을 붙여서 <리움>이라는 미술관을 지어버린 거다. 설립자 이름 붙이는 미술관/건물 많으니까(사실 거의 그런 식이다) 그게 딱히 나쁘다거나 불만이라거나 하는 건 아니다. (혹 내가 나중에 돈 많이 벌어서 미술관을 지으면 이름을 빼쿰,이라고 하나? 진공청소기랑 헷갈릴텐데)

시대의 한마디

부정적인 것처럼 써놓긴 했지만, 세계적인 건축가의 작품을 비싼 비행기값 물지 않고 한국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 결코 나쁜 일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이렇게 좋은(정확히 말하면 돈 잘 쓰는) 미술관이 있어서 외국의 유명작가 작품을 한국에서 볼 수 있는 것 역시 결코 나쁜 일은 아니다. 입장료(비싸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를 더 깎아주거나 사진도 맘대로 찍게 해줬다면 좀더 좋은 이야기를 해줄 수 있었겠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