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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봐도…

2007년 11월 19일

영화평,이라고 하긴 좀 거창하고,
어쨌든 영화를 보고 나면 홈페이지에
감상문을 꼬박꼬박(까지는 아니었지만 대충 그렇다치고) 쓰던 시절이 있었는데

요즘은 영화를 주구장창 (인터넷의 발달로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영화 많이 보고 있다) 보면서도
감상을 글로 적을 생각이 전혀 들지 않고 있다.

왜 그럴까.

뭐, 왜 그럴까 라는 질문부터가 좀 이상할 수도 있다.
내가 무슨 전문적인 영화평론가도 아니고, 글쓰는 게 직업인 사람도 아니니까.
그렇지만 예전엔 영화 한 편 보고나면 짧든 길든 수첩에라도 꼬박꼬박 뭐라고 끄적거리던 녀석이
이젠 영화를 보다가도 졸고
(서른다섯 이전엔 아무리 피곤하더라도 극장에서 영화보다가 졸아본 적 없다)
보고나도 아무 생각 없고
가끔은 뭘 봤는지도 가물가물한 상태가 돼버린 거다.

어쩌면 요즘 들어 영화를 “너무 많이 본 탓”일 수도 있다.
시간만 나면 영화를 봐댔으니 아예 뭘 적고 할 여유조차 없어진 게지.
그런데 그렇다고 하기엔 아무 생각없이 인터넷 뒤지고 있는 시간이 너무 많다.

아니면 이런 이유일 수도 있다.
예전에 홈페이지에 올리는 영화감상은 주로 “악평”을 하기 위한 경우가 많았었다.
그러니 좋게 본 영화 이야기는 굳이 홈페이지에 올리지 않았고
(어딘가 적어두긴 했었다)
주위 사람들 표현을 빌면 원래 한 까칠하던 성격이 점점 부드러워지면서
(좀더 정확하게 “사람됐다”고 표현하는 사람이 많다)
좋게 본 영화가 점점 많아지고
그러다보니 홈페이지에 올릴 이야기는 줄어들고
그러면서 점점 할 말도 잃어가고
그렇게 된 것일 수도 있다.

그것도 아니면
대단치 않은 지식을 바탕에 깐 상태에서 영화를 너무 많이 보다보니
이젠 그 영화가 그 영화 같고 저 영화는 저 영화 같고
영화를 보면서 옛날에 봤던 딴 영화나 떠올리고 있으니
이게 뭐 새롭게 감상씩이나 적어둘 말이 없는 것일 수도 있다.
옛날에 본 무슨 영화랑 비슷하더라, 이걸 감상이라고 할 수는 없잖아.

아무튼 그래서
앞으로는 영화를 보면 억지로라도 몇마디 기록으로 남겨둘까 궁리중.
정말로 “옛날에 본 무슨 영화 같더라” 내지는 “보다 졸았다”라는 단문이라도.
최소한 내가 무슨 영화를 봤는지는 나중에 알아야 하지 않겠나… 이런 차원이다.

근데 생각해보니 그걸 알아서 뭐하나 싶은
시대가 썼습니다.

점점 바보처럼 변하는
시대가 쓴 것 같기도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