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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자와 거짓말

2007년 5월 17일

내 생각엔 별로 관계없는 이야기인 것 같은데, 어쨌든 두 이야기를 하나로 묶어서 해야겠다. 물론 별로 관계없다는 건 순전히 내 생각이고, 많은 분들은 두 이야기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어쨌든 두 이야기 모두 주인공은 개그우먼 이영자니까 말이다.

개인적으로 이영자, 좋아하지 않는다. 그럼 싫어하는 거냐? 라고 누가 되물어도 강하게 부정하고 싶지 않을 정도. 조혜련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걸 보면, “비호감”을 무기로 삼은 (특히 여자)연예인들은 공통적으로 싫어한다고 봐도 큰 무리 없겠다. 이영자가 요즘 한창 인기 좋은 <무릎팍도사>라는 프로그램에 나와서 “공중파로 복귀해도 괜찮겠냐” 뭐 이런 소리를 했다는데 나는 그 사람이 공중파에 나오건 수중파에 나오건 아무 상관이 없다, 뭐 이런 기본적인 입장을 갖고 있다는 거다.

첫번째 이야기는 한때 씽씽 잘나가시던 이영자가 갑자기 무너져내린 수 년 전의 그 사건 이야기다. 사실 별로 관심도 없었고 (싫어했다니까) 시간도 많이 흘러 자세한 내용까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아마 이영자가 다이어트 비디오를 냈는데 사실은 지방흡입으로 살을 뺀 거다, 뭐 그런 논란이었을 거다. 왜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물의연예인(특히 여자)”들은 수습단계에서 반드시 “눈물의 기자회견”이라는 필수코스를 거쳐야하는 관계로, 이영자도 같은 단계를 밟은 뒤 TV에서 조용히 자취를 감췄나보다. 그리고 뭐, 다른 연예인들 다 그렇듯 조금조금 다시 TV에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고.

그런데 지금 돌이켜생각해보니, 이제까지 봐왔던 “물의연예인”들과는 조금(혹은 많이) 다른 부분을 이영자에게서 찾아낼 수 있었다. 먼저 대부분의 물의연예인과는 달리 “범법행위”를 한 것은 아니라는 점. 즉 잘잘못을 떠나서 그 문제에 경찰이나 검찰이 개입해서 잡아가고 그럴만한 일은 아니었다는 거다. 물론 모든 물의연예인들이 다 불법행위를 저질렀던 건 아니다. 얼른 생각나는 이승연 위안부누드사건만 해도 법적으로야 아무 문제 없었을 거다. 소재 자체가 좀 민감했고 화제 자체가 좀 선정적이다보니 그게 (내 생각으로는)필요이상 문제가 커져버렸던 거지. 그런데 이영자 다이어트 사건은 그렇게까지 민감하거나 선정적일 건데기가 없지 않았나. (물론, 수많은 여성분들에게 다이어트라는게 대단히 민감한 문제일 수는 있지만)

그렇다보니 그 사건의 핵심은 고작(!) “이영자가 거짓말을 했다”라는 것인데, 다시 말하면 “과장광고”일 수도 있고 “허위광고”일 수도 있겠다. (근데 허위광고면 잡혀가는 거 아닌가) 하지만 까놓고 말해서 지금 TV에 방영되고 있는 광고들 중 엄밀하게 따져서 과장광고 아닌 게 뭐가 있나. 특히나 케이블채널 홈쇼핑광고 등에서 연예인들이 직접 체험 어쩌구 떠들어대는 숱한 물건들 중 정말 그 연예인이 직접 체험해본 게 몇 개나 되나. 해마다 달마다 쏟아져나오는 연예인들 내세운 다이어트 비디오/보조식품/운동기구 중 정말 그 연예인이 사용해서 살뺀 것이 얼마나 되나. 이런 쪽에까지 생각이 미치면 “도대체 이영자가 왜 욕을 먹었지?”라는 생각조차 들더라는 말이다.

뭐 옛날에 끝나버린 일 이제와서 그때는 심했네 어쨌네를 따지려는게 아니다. 그게 몇년도 일인지 잘 기억이 안나지만 수 년이 지난 거 같은데, 그 사이에 음주운전하다 걸린 놈이나 마약먹고 들어간 놈이나 사람 팬 놈이나 군대 빼려다 걸린 놈이나 등등 숱한 물의연예인들이 사고쳤다가 복귀했더라. 왜 이영자만 여태까지 방송 좀 하려고 하면 그 (대단한 것 같지도 않았던) 문제가 튀어나오냐 이거지.

내 생각은 그렇다. 나는 기본적으로 연예인을 공인이라고 일컫는 걸 아주 싫어한다. 나는 연예인이 일반사람보다 더 도덕적이고 더 올바르게 살아야한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우리가 그런 사고방식을 연예인에게 주입시켜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연예인 본인이 스스로의 상품가치를 위해서 그런 부분을 알아서 조심하는 거야 말릴 필요 없지만. 그런 맥락에서 이영자가 옛날의 잘못을 들먹이며 이제는 복귀해도 되나요…? 라고 묻는 것 자체가 어이가 없다. 그게 무슨 시청자협회에서 2년간 연예인자격정지 이렇게 정해줘서 그 기간이 지나면 다시 복귀하고 뭐 그런 문제였나. 지금 나와봐야 안팔릴 게 뻔하니까 그냥 사그라들었다가 이제 사람들 대충 잊어먹은 거 같고 자기가 좀 팔릴 것 같으면 슬쩍 나오고 다 그런 문제였잖아. 이영자가 누구 허락맡고 방송 시작한 거 아니었으면 다시 시작할 때도 누구한테 허락맡을 이유 없다. 그냥 방송국에서 좋다고 하면 하는 거지, 시청료도 내기 싫다는 일반시청자들이 걔를 써라 마라 할 권리가 난 없다고 보는 거다.

이젠 다른 두번째 이야기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두 이야기를 별로 관련이 없다고 본다. 그런데 굳이 같이 하는 이유를 앞서 주인공이 이영자라서 그렇다고 했는데, 사실 더 정확한 이유는 “이영자의 거짓말”이라는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여서 지금 두 이야기가 동시에 회자되고 있기 때문이다. 소위 “일밤가짜반지사건”이라는 것으로, 요즘 왠만한 포털사이트에 관련기사만 백 개가 넘으니 자세한 사건경위는 생략하도록 하겠다.

여기서 일종의 물타기로 옛날 이야기를 하나 해보자. 유학원에서 일하던 시절의 개인적인 경험인데, MBC로 기억하지만 확실하지는 않은 하여튼 공중파방송국 9시뉴스에 우리 회사 사람들이 출연한 적이 있었다. 9시뉴스에 출연했다는 걸 보니 무슨 사고라도 쳤나 싶겠지만, 아마 해외이민 관련 꼭지를 하나 따면서 우리 회사 사장한테 인터뷰(한 10초나 나왔겠나?)하는 그런 정도로 나갔었다. 그런데 그 방송분이 이런 구성으로 되어있었다. “IT업체에서 일하는 30대 중반의 여성 김XX씨(실명 나갔다)는 취업이민을 준비하고 있다…” 뭐 이런 종류의 나레이션을 기자가 하면 문제의 김XX씨가 상담받는 화면, 관련 서적을 뒤지는 장면, 뭐 그런 화면 깔아주고, 김XX씨의 짧은 인터뷰 나오고, 기자가 또 뭐라뭐라 하고나서 우리 사장 인터뷰 나오고, 뭐 이런 식. 여기서 말했던 문제의 김XX씨는 바로 당시 우리 사장 마누라였다. IT업체에서 일하는 30대 중반? 택도 없는 소리다. 무슨 소리냐 하면, 방송국 기자가 지 맘대로 소설을 하나 써와서 마침 관련 인터뷰를 할 회사에서 연기자를 하나 뽑아서 촬영했단 말이다. (아, 원래는 직업이 다른 거였는데 사장 마누라가 이쪽이 더 폼나보인다고 생각했는지 IT업체 근무로 바꿔달라고 했던 게 기억난다) 그냥 다큐멘터리 같은 걸로 나가는 것도 아니고(다큐멘터리라고 해도 당연히 문제다. 조작된 다큐멘터리 문제로 한때 KBS에선가 난리가 났던 적도 있었고) 방송뉴스, 9시뉴스에서 그렇게 “조작방송”을 내보내는 꼬라지를 보고 있자니 얼마나 한심하던지. (그후로 각종 신문에서 “XXX를 하는 김모씨는 요즘 XXX에도 관심이 많다…”는 식의 기획기사가 나오면 이거 또 소설이겠군, 한다. 아니거나 말거나)

사람들이 “방송이 진실되어야 하는데 어떻게 그런 거짓말을 할 수가 있는가” 식으로 몰아가던데, 까놓고 말해서 방송이 진실되긴 개뿔이 진실되나. 큰 틀에서 거짓말을 하는게 아니라면 대충 세세한 건 (특히나 방송은 “그림이 나와야 하니까”) 그림만 좋게 나오는 쪽으로 바꾸거나 왜곡하거나 하는 거 비일비재하다. 옛날 <느낌표>에서 거리인터뷰로 책 많이 읽은 사람 찾아서 책선물 주는 코너가 있었는데, 그것도 실제 거리인터뷰는 하되 책 많이 읽은 사람은 미리 섭외해서 우연히 마주치는 것처럼 꾸몄던 거다. (방송 보면서 내내 그런 의심 하고 있었는데, 직접 섭외된 사람이 확인까지 시켜줬다) 문제가 된 <일밤>의 <경제야 놀자> 코너만 봐도, 방송에서는 MC들이 직접 집을 둘러보면서 뭔가 돈이 될만한 물건을 찾아내 감정받는 것처럼 진행되지만 사실 해당 연예인이 미리 감정받을 물건 정해서 방송국에 통보해주고 그러면 방송국에서는 해당 물건을 감정할 전문가 미리 섭외해서 데리고 가는 그런 식인 거, 굳이 말 안해도 다들 눈치까고 있는 거 아닌가. 그런 건 거짓말 아니고 이영자가 오바한 것만 거짓말인가. 도대체 거짓말의 기준이 뭐야.

정확히 말하면 지금 이 사건의 핵심은 “거짓말”이 아니라는 게 내 생각이다. 여태껏 <경제야 놀자>에서 누군가한테 선물받았다고 소중한 물건이라고, 대단한 것처럼 들고 나왔는데 감정해보니 가짭니다, 이래버렸던 경우 엄청 많았다. 이영자의 경우에 빗대어 봤을 때 그 전에도 거짓말이었던 케이스가 분명 있을 거다. (가짜인줄 이미 알고 내놨거나 선물받은 건 아니었거나 뭐 그런) 그런데도 이번에만 문제가 되고 또 그 문제가 이렇게 심각하게 커진 것은 이영자가 선물로 준 사람의 실명을 “이소라”라고 밝혔기 때문이었다. 그냥 이영자가 누군가한테 선물로 받은 반지가 가짜였다더라, 했으면 사람들이 이영자만 속아서 안됐다고 동정하거나 아예 비웃어버리거나 그래버렸을텐데, 당사자가 이소라라고 딱 밝혀져버리니 이 오지랖 넓은 인간들이 이소라를 씹어대기 시작한 것이 문제의 발단이고 핵심인 거다. 그게 설마 진실이었다고 해도 절교를 하던 말던 그건 이영자와 이소라간의 문제일텐데, 그걸 자기가 뭐라도 되는 양 이소라가 사과해라 그렇게 살면 안된다 지랄들을 해댔으니, 졸지에 억울하게, 아무 이유없이 욕을 먹게된 이소라가 방송국에 해명을 요구하게 된 거고, 어쩔 수 없이 이영자가 사실을 밝히고나니 죄없는 사람에게 욕을 하다가 뻘쭘해진 네티즌들이 이젠 이영자를 씹기 시작한 거다. (뻘쭘한 일부 네티즌은 아직도 이소라를 욕하기도 한다. 원래 방송이 진실이고 이영자의 해명이 거짓말이라고 지들 맘대로 결론내려서) 다시 말하면 지금 상황은 “너 때문에 내가 괜히 죄없는 사람 욕했잖아!”라는 덮어씌우기 상황인 거다. 내 관점에선 이렇게 보인다. “괜히 오지랖 넓게 참견하고 비난하다가 비난할 사람이 없어지니 엄한데 화풀이하고있네”.

나는 여전히 두 이야기가 별로 관계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영자의 여전한 거짓말” 어쩌구 하는 타이틀로 기사가 뽑아져나와서 후려갈겨대는 걸 보면 두 이야기를 억지로 연결시켜서 이영자를 기본적으로 개념이 없는 연예인, 도덕적이지 못한 연예인으로 매도시키려는 의도까지 엿보이곤 한다. 어쩌면 이영자가 오랜 세월 공중파에 복귀하지 못한 이유는 연예부 기자들과 사이가 나빠서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까지 요즘 심심찮게 들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