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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법 개정안에 대하여

2005년 4월 18일



이 글은 인터넷 모 게시판에 올렸던 글을 원고청탁을 받아 조금 고쳐서 서울예술대학 학보에 투고했던 것입니다.

2005년 1월 16일, 새로운 저작권법 개정안이 시행된다고 알려지면서 그 날이 오면 인터넷 대란이라도 벌어질 것처럼 한바탕 난리법석이 펼쳐졌었다. 하지만 개정안 시행이 두 달을 넘긴 지금, 네티즌들 스스로 음악파일 등의 업로드를 자제하는 모습이 곳곳에서 보이고 있을지언정 호들갑을 떨어댄 것에 비해 수많은 네티즌들이 줄줄이 범법자로 고발당하거나 하는 모습은 개정안 시행 이전과 비교해서 딱히 늘어났다고 보기 힘든 상황이다. 하지만 몇몇 재수없는 네티즌들이 소위 ‘넷파라치’에게 걸려들어 돈을 물어주거나 소송에 휘말린다는 기사도 심심찮게 나오고, 문화관광부도 조만간 저작권법의 전면 개정(당연히 저작권의 보호를 강화하는 측면으로)을 시사하고 있는 만큼 이 불씨가 완전히 사그라들었다고 보기는 힘든 것 같다.

분명한 것은 저작권은 보호되어야한다는 대전제이다. 아마 현행 저작권법에 불만이 있는 사람들도 이러한 대전제를 부정하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저작권법의 세부조항, 특히 1월16일 시행된 개정안에 대한 불만이 꼭 저작권 보호라는 대전제를 부정하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새로운 저작권법 개정안의 핵심내용은 무엇이었나. 개정안 시행을 앞두고 인터넷을 대차게 휩쓸었던 소문에 따르면 “이번 개정안이 시행되면 카페나 블로그 등에 개인적으로 올린 배경음악도 모두 불법이고 규제대상이다”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느정도 사실이 알려졌지만) 카페나 블로그에 개인적으로 음악을 올리는 행위는 예전부터 불법이었고, 당연히 개정안에서도 그런 내용을 특정하고 있지는 않았다. 인터넷에 떠도는 글을 무시하고 정확한 개정 내용만 살펴보면, 단지 ‘전송권’을 실연자와 음반제작자, 영상제작자에게 부여하는 것 뿐이었다. 전송권이라는 개념이 2000년 1월12일 개정안에 처음 도입되었을 때는 저작자에게만 전송권을 가진다고 규정했으나 이번에 법이 개정되면서 그 대상 폭이 넓어졌다는 것이다. 여기서 잠깐 “전송권”이 무엇인지를 짚어보자면, 명확하지는 않지만 P2P 또는 스트리밍서비스를 일컫는 것으로 생각된다. 다만 P2P는 “배포권”의 부여를 통해 규제할 수 있다는 것이 그간의 해석이므로, 전송권은 스트리밍서비스에 한정하여 생각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저작권법 제6절 “지적재산권의 제한” 항목에는 제22조 재판절차등에서의 복제, 제23조 학교교육목적등에의 이용, 제24조 시사보도를 위한 이용, 제25조 공표된 저작물의 인용, 제26조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아니하는 공연, 방송, 제27조 사적이용을 위한 복제, 제28조 도서관등에서의 복제등, 제29조 시험문제로서의 복제, 제30조 시각장애인등을 위한 복제등, 제31조 방송사업자의 일시적 녹음,녹화, 제32조 미술저작물등의 전시 또는 복제, 제33조 번역등에 의한 이용 등등에 대해서는 저작권 침해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조항이 있다는 점이다. 그게 뭐가 재미있는 사실이냐하면, 이번 개정에서 적용 폭이 확대된 전송권은 위의 “지적재산권의 제한” 항목들 중에 전혀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복제나 방송 등은 개인적인 사용이나 비영리를 추구하는 경우 저작료를 물거나 허락을 받지 않아도 사용할 수 있으나 전송 만큼은 무조건 저작권 침해가 인정된다는 소리밖에 안되는 것이다.
음악 시디를 사서 개인적으로 복제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불법이 아니다. 그 시디나 MP3파일을 가까운 친구들에게 직접 만나서 나눠주는 것도 예나 지금이나 불법이 아니다. 그런데 그 파일을 인터넷에 올려서 다른 사람이 듣게 하는 순간 그 사람은 범법자가 된다. 불특정한 수 많은 사람에게 전파시킬 수도 있는 “공연/방송”도 비영리적인 목적이라면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공연/방송할 수 있는데, 한두 명이 볼까 말까한 내 블로그의 포스트에 올린 배경음악은 불법이 되어버린다. 다시 말하지만 저작권법의 보호라는 대전제에는 십분 동의하겠는데, 유독 전송에 대해서만 이렇게 독하게 규제해야만 하는 어떤 피치못할 이유라도 있단 말인가.

인터넷에서 음악과 관련한 저작권 침해가 워낙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강하게 규제하는 것이라고 반론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확히 말해서 인터넷에서 가장 많이 침해당하고 있는 저작권은 음악이 아니라 글이나 그림, 사진에 관한 저작권이다. 저작권법으로 한바탕 시끄럽던 때에 한 언론에서 문광부장관과 문광위 위원들의 홈페이지에서도 저작권을 위반한 사례가 있다면서 기사화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대부분의 위반사례가 신문기사의 무단펌질이었다. 인터넷 문화의 꽃이며 핵심으로까지 불릴만한 “펌질”이 사실은 엄청난 저작권 침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상당수 펌질이 “카피레프트”를 선언한, 즉 “맘대로 퍼가세요”라고 선언되어있는 글이나 그림을 가져오는 것이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역시 상당하다. 지금 이 시간에도 유명 스포츠신문 사이트의 만화 이미지 같은 것들은 거침없이 인터넷을 통해 퍼져나가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텍스트나 이미지의 저작권 침해에 대해서는 (관련업계가 완전히 손을 놓고 있는 것도 아니지만) 음반업계처럼 조직적이라거나 대규모로 대응하는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다. 물론 글이나 그림의 저작권 침해는 음악과 똑같이 해석할 수 없는 부분이 분명히 존재한다. 인터넷을 통해서 유통되는 글이나 그림은, 뭐 인쇄(프린트)해서 오며가며 침대에서 뒹굴뒹굴하며 읽고 볼 수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인터넷을 통해서만 보게 된다. 즉 남의 저작물을 인터넷을 통해 습득하더라도 그 저작물을 활용할 수 있는 공간과 시간에 어느정도 제약을 받게 된다는 말이다. 하지만 음악의 경우는 – 대표적으로 MP3를 예로 들면, MP3 플레이어라는 물건이 떡하니 나와있으니, 한번 인터넷에서 다운받으면 집이건 직장이건 지하철이건 목욕탕이건 언제나 아무데서나 들을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MP3에 대한 규제가 다른 형태의 저작물들에 비해 조금 강화되고 있는 부분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다시 이번 개정안 이야기를 해보자. 이번 개정안은 전송권의 확대만을 위한 것이고, 전송권의 적용 확대가 MP3의 배포에 직접적으로 미치는 영향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MP3에 대한 저작권 침해 문제는 그동안 여기저기서 충분히 제기해왔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속을 하지 못하는 것은 법적으로 미비한 부분이 있어서가 아니라 너무나 방대한 규모로 벌어지고 있어서 단속을 못하는 것뿐이니까 말이다. 이번 개정안의 목적은, 다운받을 수 없는, 그러므로 오직 인터넷을 통해서 들을 수밖에 없는 스트리밍 서비스를 규제하겠다는 것이다. 개인적인 느낌을 더 정확하게 표현해넣자면 “개개인의 사소한 스트리밍 서비스조차” 규제하겠다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말이다. 왜 “개개인의 사소한 스트리밍 서비스”를 강조하느냐 하면, 이미 대형스트리밍서비스(벅스뮤직 등)는 전송권이 아닌 복제권의 침해로 고발당하고 협상하고 유료화하고… 이런 식의 길을 걸어왔기 때문이다.
간단하게 말해서, 이번 개정안은 수많은 저작권자 중 특히 “음반업계”의 입장만 지나치게 대변하고 있으며, 음악이 아닌 다른 유형의 저작물들과 비교했을 때 음악 관련 저작권만을 지나치게 보호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생각한다. 인터넷에서 가장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는 텍스트와 이미지의 저작권 침해에 대해서는 법적으로 규제를 강화하는 등의 가시적인 조치가 별로 없는데도, 음악에 대해서만은 개인적이고 비영리적이며 실질적 피해가 미미하다고 판단되는 수준조차도 규제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는 것이 뭔가 형평성에 맞지 않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개인용도의 복제”나 “비영리적인 목적의 공연/방송”은 법으로 허용하면서 “개인용도의 비영리적인 전송”은 불법이라는 이 현실을 어떻게 공평하게 받아들일 수 있단 말인가.
간혹 이러한 인터넷의 개인미디어에 대한 일련의 규제방향에 반발하는 네티즌들을 “저작권에 대한 무지” 혹은 “음반업계가 쫄딱 망해가는 현실을 도외시하고 개인의 사소한 권리만 내세우는 이기심” 식으로 몰아붙이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현재 네티즌들의 반발은 무지나 이기심 때문이 결코 아니다. 이번 개정안이 갖고있는 성격 자체가 “음반업계가 자기네들의 구조적인 문제는 도외시하고 업계의 불황을 무조건 MP3 탓으로 돌리면서 무리한 규제를 하고 있는” 이기적인 현실의 연장선상에 있기 때문에 저작권 보호나 음반업계의 활성화 같은 당연한 문제와는 별개로 음반업계의 내부적인 문제나 대중음악 전반에 대한 토론이 벌어질 수밖에 없을 뿐이지, 그 사람들이 진정으로 “음반업계가 썩어있으니 저작권 따위는 보호받을 필요 없어” “들을만한 노래가 없으니 음반업계는 망해도 그만이야”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동안 소위 “법”이라는 것들이 우리 사회의 보편타당한 감정이나 상식보다 특정업체/단체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모습은 종종 보아왔지만, 이렇게 힘있고 돈있는 단체의 목소리에 개인의 작은 권리 따위는 쉽게 묻혀버리고 그것도 모자라 범법자 취급까지 받게 된 다수의 힘없는 네티즌들의 분노가 어찌 무지나 이기심일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