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대리의 일기]
12/06 (월) 날씬 좋은데 춥다 쒸…
아침에 넥타이를 매면서 이렇게 이빨을 악물어보긴 처음이었다.
너무 힘을 줘서 넥타이를 매다가 왼손에 쥐가 났고
너무 힘을 줘서 잡아당겼다가 목졸려 죽을 뻔 했다.
피 부장. 오늘은 너와 나의 피할 수 없는 한판승부다.
미리 황 대리한테 그 날라차기 비법이나 전수받아놓을 걸 그랬다.
워쨌건, 결전의 그 순간은 다가왔다.
피 부장과 사무실 앞에서 마주쳤다.
다 해놨나?
천만에요.
다행히 피 부장 손에 아무 것도 들려있지 않았기 때문에
공포의 서류 던지기를 시도하지는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지성인이랍시고 맨손으로 패지는 않는다. 허울좋다 지성인. 욕이나
하지마라.
그런데 아무래도 이상하다. 피 부장이 너무 조용하다.
내 말을 개떡으로 아는 거냐고 길길이 날뛰며 사무실을 한바탕 뒤집어 놓고도 남을
사람인데 이렇게 조용할 수가.
어쨌든 그 보고서는 그냥 그렇게 어물쩍 넘어가버렸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대충 모양새라도 만들어놔야겠다.
그렇다고 야근을 할 수는 없지…? 워낙이 황 대리 일이니까 반 나눠서 같이
하자고 해야지.
그래도……
불안하다……
[피 부장의 일기]
12/06 (월) 날씨 관심없다
눈물이 앞을 가린다는 말은 이럴 때 써야되나 보다.
근데 이게 기쁨의 눈물인지 슬픔의 눈물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침 일찍 비상연락망으로 전화가 날라왔다.
뭐 이사님 부친이 위독하시다나?
조만간 꼴까닥할 가능성이 크므로 이사님이 급히 고향으로 내려가셨단다.
그럼 보고서는?
오늘 보고서가 안되있다며 나와 봉 대리를 작살내야할 이사가 고향앞으로 가다니?
이게 무슨 개껍질 태워먹는 소린가?
부랴부랴 이사한테 핸드폰을 날렸다.
필쏭~ 피 부장임다.
오 피 부장~ 전화까지 해주고 고마벼.
다름이 아니라 오늘 보고드려야할 그 보고서…
뭐? 보고서? 무슨 보고서?
저 놈한테 기대를 한 내가 병신이지. 오늘 출근했어도 아마 내가 말안했으면 모르고
넘어갔겠구먼.
거 저희 경쟁사하고 그 비교분석하는…
어… 어… 아 그거… (내 짐작이 맞다면, 아직도 기억못하고 대충 아 그거 라고
넘기는 중이다) 뭐 괜찮아… 천천히 하지 뭐… 그런데 내가 이번 주에는 아마 서울로
못 갈 거 같고… 담주 출근하면 바로 보자고 응…
전화를 끊으면서 피눈물을 쏟았다.
여러분은 아시나요. 이게 기쁨의 눈물인지 슬픔의 눈물인지.
봉 대리의 명은 질기기도 하다.
일을 하다보면, 왠지 “급하다”고 하는 일이 사실 “회사가 돌아가는데에는” 그리 급하지 않은데 단지 “상관이 빨리 보고싶어서” 급하다고 재촉하는 경우를 왕왕 만나게 된다.
그런 일을 쓸데없이 야근해가며 주말 출근해가며 해치웠는데, 정작 그 보고를 받고 칭찬해줘야할 상관이 훌쩍 어딘가로 출장가버리거나 하는 경우까지 콤보로 만나면,
짜증나는 거다.
동감. 급하다고 해서 점심도 미루고 해놓으면 “내일 볼게” 이따위로 나오는 우리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