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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대리일기 여덟번째

2007년 3월 13일

[봉대리의 일기]

12/06 (월) 날씬 좋은데 춥다 쒸…

아침에 넥타이를 매면서 이렇게 이빨을 악물어보긴 처음이었다.
너무 힘을 줘서 넥타이를 매다가 왼손에 쥐가 났고
너무 힘을 줘서 잡아당겼다가 목졸려 죽을 뻔 했다.
피 부장. 오늘은 너와 나의 피할 수 없는 한판승부다.
미리 황 대리한테 그 날라차기 비법이나 전수받아놓을 걸 그랬다.
워쨌건, 결전의 그 순간은 다가왔다.
피 부장과 사무실 앞에서 마주쳤다.
다 해놨나?
천만에요.
다행히 피 부장 손에 아무 것도 들려있지 않았기 때문에
공포의 서류 던지기를 시도하지는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지성인이랍시고 맨손으로 패지는 않는다. 허울좋다 지성인. 욕이나
하지마라.
그런데 아무래도 이상하다. 피 부장이 너무 조용하다.
내 말을 개떡으로 아는 거냐고 길길이 날뛰며 사무실을 한바탕 뒤집어 놓고도 남을
사람인데 이렇게 조용할 수가.
어쨌든 그 보고서는 그냥 그렇게 어물쩍 넘어가버렸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대충 모양새라도 만들어놔야겠다.
그렇다고 야근을 할 수는 없지…? 워낙이 황 대리 일이니까 반 나눠서 같이
하자고 해야지.
그래도……
불안하다……

[피 부장의 일기]

12/06 (월) 날씨 관심없다

눈물이 앞을 가린다는 말은 이럴 때 써야되나 보다.
근데 이게 기쁨의 눈물인지 슬픔의 눈물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침 일찍 비상연락망으로 전화가 날라왔다.
뭐 이사님 부친이 위독하시다나?
조만간 꼴까닥할 가능성이 크므로 이사님이 급히 고향으로 내려가셨단다.
그럼 보고서는?
오늘 보고서가 안되있다며 나와 봉 대리를 작살내야할 이사가 고향앞으로 가다니?
이게 무슨 개껍질 태워먹는 소린가?
부랴부랴 이사한테 핸드폰을 날렸다.
필쏭~ 피 부장임다.
오 피 부장~ 전화까지 해주고 고마벼.
다름이 아니라 오늘 보고드려야할 그 보고서…
뭐? 보고서? 무슨 보고서?
저 놈한테 기대를 한 내가 병신이지. 오늘 출근했어도 아마 내가 말안했으면 모르고
넘어갔겠구먼.
거 저희 경쟁사하고 그 비교분석하는…
어… 어… 아 그거… (내 짐작이 맞다면, 아직도 기억못하고 대충 아 그거 라고
넘기는 중이다) 뭐 괜찮아… 천천히 하지 뭐… 그런데 내가 이번 주에는 아마 서울로
못 갈 거 같고… 담주 출근하면 바로 보자고 응…
전화를 끊으면서 피눈물을 쏟았다.
여러분은 아시나요. 이게 기쁨의 눈물인지 슬픔의 눈물인지.
봉 대리의 명은 질기기도 하다.

SIDH’s Comment :
일을 하다보면, 왠지 “급하다”고 하는 일이 사실 “회사가 돌아가는데에는” 그리 급하지 않은데 단지 “상관이 빨리 보고싶어서” 급하다고 재촉하는 경우를 왕왕 만나게 된다.
그런 일을 쓸데없이 야근해가며 주말 출근해가며 해치웠는데, 정작 그 보고를 받고 칭찬해줘야할 상관이 훌쩍 어딘가로 출장가버리거나 하는 경우까지 콤보로 만나면,

짜증나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