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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대리일기 아흔일곱번째

2008년 2월 24일

[봉대리의 일기]

4/24 (월) 맑음

점심 가지구 고민할 때마다 차라리 식권 끊어서 주는 밥 먹는 구내식당
같은 거라도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굴뚝같지만,
일단 우리 회사는 그런 복지혜택이 (굳이 혜택이라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지만) 없는 관계로 매일매일 메뉴를 갖구 고민을 해야만 한다.
오늘은 어쩌다보니 사무실에 마땅히 같이 밥먹을 사람이 없어졌다.
피부장은 외부 손님이 와서 같이 밥먹는다고 나가는데… 뭐 중요한
손님이라면서 과장 둘을 다 끌고 가버렸따.
황대리는 갑자기 임신한 아내가 근처 백화점에 쇼핑 왔다며 허겁지겁
나가버리고…
사무실에 남은 인간, 전유성, 지화자, 모주라.
맨날 황대리하고 백반 먹으러 가거나 오과장 조과장한테 고기
얻어먹었는데…
졸지에 내가 사야될지도 모르는 위기에 봉착하고 말았따.
근데 혼자 먹기는 죽기보다 싫더군.
봉대리님 저희 피자 사주실래요?
지화자씨가 혐오스러운 표정으로 내 팔에 엉겨붙는다.
피자?
난데없이 왠 서양빈대떡?
어머 피자 싫어하세요? 구세대신가보다.
모주라씨의 한마디에 용기백배하여 앞장섰다.
피자! 까짓거 못먹을게 뭔가!
어떻게 먹는건지는 잘 모르지만.
뭐 빨간 지붕으로 생긴 피자집에 당당하게 들어갔따.
피자 네접시 주세요.
자신감 넘치게 주문했더니 대학생 알바처럼 보이는 아가씨가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다.
저기 피자는 그렇게 시키는게 아닌데요…
어허 누굴 구세대로 취급해. 네사람이니까 네접시 빨랑 갇다줘요.
한 접시가 더럽게 비싸군… 투덜투덜… 그러구 있는데 나머지 세명
눈치가 좀 이상하다.
봉대리님 이건 한사람이 한접시씩 먹는게 아니거든요…
전유성이 나지막히 속삭여준다. 다들려 씹새야.
뭐 라지라고 한판을 크게 시키더니 둥근 톱으로 휙휙 썰어갖구 셋이
한쪽씩 들고서 냐뉵냐뉵 먹어댄다.
저거 먹고 배가 찰라나?
기분이 떨떠름한 탓인지 한 두쪽 집어먹었는데 모래 씹는 맛이었다.
그저 김치찌게나 육개장에 밥 말아서 후딱 먹어치웠어야되는건데…
애들 따라다니다가 입맛만 버리지 원…

[전유성의 일기]

4/24 (월) 맑음

오늘은 모처럼 취향에 맞는 점심을 먹을 기회였다.
맨날 조과장, 오과장 따라다니면서 맵기만 한 육개장, 무슨 맛인지도
모르는 순두부백반, 니글거리는 김치찌게, 좀 발전하면 허걱거리는 짱께
정도가 주메뉴였는데,
오늘은 무슨 바람들이 났는지 점심 약속이 있다며 죄다 사라지고 말았다.
이것은 기회다.
평소 뜻이 맞는 지화자씨와 모주라씨의 손을 움켜잡고 희열에 부르르
떨어주었다.
혼자 멀뚱하게 앉아있는 봉대리님 보고 피자먹으러 가자고 권했다.
예상대로 내키지 않는 표정.
그러나 구세대라는 말 한마디에 갑자기 우리보다 앞장서서 피자집으로
향한다.
하지만 타고난 무식은 감추지 못하고 피자 네접시를 시키는 용감함을
발휘…
피자는 맛있었지만 주변 사람들 시선이 따가와서 맛있게 먹었는지 잘
모르겠다.
담번에 이런 기회가 생기면 따돌리고 와야지…

SIDH’s Comment :
이 글을 썼을 땐 나름 신세대라고 볼 수도 있는 나이였는데
(스물아홉살이었던가)
그때까지 피자를 먹어본 적이 없/었/다.

거의 경험담을 썼다고 보면 된다.

물론 지금은 피자 잘 먹지.
일부러 먹는 편이 아니라서 그렇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