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이 영화, 이런저런 매체를 통해 개봉하기 전에 접했을 때는 뭐 그냥 흔히 나오는 액션스릴러물이라고 생각했다. 비슷비슷한 영화 수도 없이 개봉하고, 주인공이 리암 니슨이면 적당히 이름값 있고, (액션배우라고 하긴 좀 그렇지만) 그러니 대박은 못쳐도 중박 정도는 되거나 그만큼도 안되거나, 뭐 그럴 거라고 생각한 거지.
그런데 이런 영화가 2주간 국내 박스오피스 1위를 비롯해 어느새 백만관객을 훌쩍 넘어버렸다. 2백만은 솔직히 좀 힘들 것 같지만 아마 수입사에서도 기대하지 않았던 대박이 아닐까 싶은. (참고로 이 영화는 2008년 5월 현재 프랑스와 중국, 한국 등에서만 개봉했고 미국에는 9월에나 개봉 예정) 아무리 딱히 경쟁할 영화가 없는 시기에 편하게 개봉했다고 해도,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영화 중에 유독 튀는 영화도 아니었고, 제작과정이 화제가 됐던 영화도 아니었고, 고작해야 영화 개봉 몇 주 앞두고 <출발!비디오여행>류의 프로그램에서 앞부분 홀라당 다 보여준 것 정도가 전부인 영화인데 상당히 안정적인 흥행세를 보이더라 이거지.
그런데 주위 사람들 이야기를 보니 이게 의외로 젊은 여성분들께 와방 인기인 거라. (이 영화 재밌을 것 같아서 보고싶다는 이야기 엄청 자주 들었다. 사실 의외일 것까지는 아닌 것이 우리나라에서 젊은 여성에게 인기가 없으면 영화 흥행하기 힘들지) 보통 액션스릴러 장르는 여성관객들이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이게 왠일? 싶었더랬다. 그냥 혼자 생각엔 무작정 때려부수는 액션은 아니고 뤽 베송이 시나리오를 썼다니까 예를 들면 좀 <레옹>스럽다던가 뭐 그런 감성이 좀 있는 겐가? 싶은 생각도 들고.
그러다가 영화를 봤더니 어익후, 이건 뭐 스티븐 시갈 형님이 되살아오신 것도 아니고… 영화에 스릴러다운 재미는 하나도 없고 (초반에만 96시간 안에 딸을 찾아야 한다… 뭐 이런 식으로 냄새를 풍기더니 그 후엔 시간 뭐 그런 거 없다. 무작정 앞으로 돌격) 사람들을 쥐잡듯 잡아버리는(죄없는 친구 마누라까지) 액션에 액션만 거듭하는 영화였던 거다. 아니 도대체 이런, 전형적인 다 때려부수는 영화를 여성관객들이 왜 좋아하는 걸까. 세상이 힘들다보니 여성관객들 취향도 예전보다 많이 드세진(?) 탓인가. 뭐 이런 생각까지 들더라.
어떤 사람한테 물어봤더니 “딸을 구해주는 아버지의 이야기라서 부성애를 느낀 탓이 아닐까?” 대충 이런 분석을 내놓던데, 옛날에 <코만도>는 안그랬나? 시갈 형님도 딸은 아니지만 조카 구할라고 기차 붙잡고 그랬었다. 아무래도 여성관객들 취향이 드세진-_- 탓이 맞지 싶은 게, <추격자> 같은 영화가 흥행하는 것만 봐도 확실히 여성관객들 취향이 옛날처럼 로맨틱코미디나 좇는 시대는 지난 것 같더란 말이지.
그렇다고 해도 역시 <테이큰>에 뭔가 있지 않나? 싶은 건, 액션히어로물인 <아이언맨>은 확실히 남자관객들의 예매비율이 높다는 점. (2008년 5월 4일 현재 맥스무비 집계) 물론 남자가 예매해도 여자 하나 끼고 들어갈 확률이 높긴 하지만 일단 <테이큰>처럼 예매비율부터 여자가 더 높지는 않다는 말이지. <아이언맨>은 너무 황당한 이야기라서 여자보다 남자가 더 좋아하는 건가? (누군가 여자가 남자보다 훨씬 현실적이라는 이야기를 하던데) 뭐 그것도 나름 이유겠지만, 수십 명의 갱단을 쥐잡듯 잡는 이야기는 얼마나 더 현실적이어서? (물론 사람이 날아다니진 않지만)
아직 정답은 알 수 없지만, 대충 스스로 타협을 본 부분은 리암 니슨이라는 캐릭터가 좀더 여성관객들에게 어필하지 않았나? 하는 것 정도. 비슷하게 부성애를 소재로 한 액션물이라고 해도 아놀드 형님이나 시갈 형님은 겉모습에서부터 너무 쌈질 잘 할 것 같은 티가 팍팍 나잖아. 그런데 니슨 형님은 딸이 유괴당하기 전까지는 그냥 이혼당한 불쌍한 백수에 지나지 않았단 말이다. (물론 숨겨진 과거는 무시무시하지만) 그러다가 딸의 유괴를 계기로 갑자기 슈퍼맨으로 변신하더니 딸 하나만 보고 일직선으로 달려가기만 한단 말이지. (그 전에 여가수 경호를 맡았다가 엄청난 능력을 쬐끔 보여주긴 하지만 그건 앞으로 일어날 사건의 복선 정도로 치고) 이런 류의 액션영화에 별로,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배우 리암 니슨을 떡 주연으로 캐스팅한 것부터가 이런 효과를 기대한 것이 아닌가 싶은데, 리암 니슨이 연기한 덕분에 “조용히 살라구 그랬는데 니가 날 건드렸으니 다 쓸어버리겠다”는 캐릭터가 상당히 설득력을 얻어버렸던 거다. 영화 자체가 스피디하고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마무리된 것도 그렇지만 일단 뭐 딴 생각할 겨를도 없이 딸만 구하러 돌진하는 아버지에게 감정이입하기 딱 좋더란 말이다. 역시, 수백 명을 한 손으로 처치하는 황당액션영화를 만들어도 관객들만 “아, (자식을 구하겠다는데) 충분히 그럴 수 있어”라고 공감해주면 일단 무리는 없단 말이지.
근데 진짜 수천 명을 한 손으로 처치해도 아무 무리 없어 뵈는 시갈 형님 영화는 왜 이리 보기가 싫은 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