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망, 그리고 삼국지 (1)

얼마전 신문을 보니, 저작권이 만료되어 <대망>이 곧 품절된다는 내용의 광고가 있었다. 전 20권이 모두 품절되기 직전이니 아직 몇 권밖에 구입하지 않으신 분들은 얼렁 전 권을 모두 구입하시라는, 일종의 떨이 광고였는데, 어차피 본인은 집에 대망 스무권을 몽조리 비치해놨으므로 그냥 한 번 보고 넘기면 그만인 광고였다.

<대망>이 어떤 소설인가. 야마오카 소하찌의 대표작으로 (그는 이 작품으로 요시카와 에이지 상을 받았다) 홋카이도 신문에 무려 17년, 4725회 연재된 소설이다. 내용은 일본 역사에서 가장 흥미진진하던 16세기 전국시대를 무대로, 원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말해주듯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주인공으로 삼아 오다 노부나가, 다께다 신겐, 우에스키 겐신, 도요토미 히데요시 등 숱한 장수들의 흥망성쇠를 다루고 있다.
그럼 본인은 왜 <대망>을 얘기하면서 <삼국지>를 같이 언급하고 있는가.

어차피 쓸 얘기가 많아서 몇 편 나눠서 갈 예정이므로 편하게 나가자. <노부나가의 야망> 또는 <신장의 야망>이라는 게임을 아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KOEI사의 대표작을 <삼국지>로 알고 계신 분들이 많겠지만, <삼국지>는 다만 한국이나 대만, 중국에서도 내용이 통하기 때문에 더욱 인기를 끌었을 뿐 그 모태는 워낙이 <노부나가의 야망>이었다. 전국시대에 혜성처럼 나타나서 전국통일의 기초를 닦았다는 오다 노부나가를 중심으로, 우리가 흔히 알고있는 그 게임 <삼국지>와 거의 똑같은 포맷으로 진행되는 게임이다. 즉 <대망>의 내용을 토대로 만들어진 게임이라고 보면 틀림없다는 얘기다. 지금은 이름이 조금 바뀌어서 최신판이 역시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

성질급한 분들을 위해서 이쯤에서 한번 짚어주고 이야기를 진행해보자. 이번에는 <노부나가의 야망>이라는 게임에서 비롯된 <삼국지>라는 게임이 얼마나 일본적으로 만들어졌는가를 얘기할 것이다. 그리고 다음에는 <대망>과 <삼국지> 두 소설을 직접 비교할 것이다.

<대망>이라는 소설을 읽기 전까지는 <삼국지>를 하면서도, <노부나가의 야망>을 하면서도 별로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대망>을 읽고보니 <삼국지>가 단지 <노부나가의 야망>의 포맷에 인물만 바꿔넣었을 뿐이라는 강한 확신을 갖게 되었다. KOEI사의 제작진들은 게임을 만들기 위해 삼국지를 읽어봤는지는 모르겠지만 제대로 중국의 당시 환경에 대해서 연구하지는 않았다는 확신도 함께 말이다.

일본의 전국시대에는 분명 ‘천황’이 쿄토(京都)에 살고 있었다. 분명히 오다 노부나가도, 히데요시도, 이에야스도 천황을 모신다는 명분에 얽매여있을 정도라면 상징적이나마 그 권위를 인정받고 있었다는 얘기다. 그렇지만 분명히 천황은 허수아비고, 부하들의 벼슬자리도 정권을 잡은 히데요시, 이에야스 등이 맘대로 줬다 뺐었다 할 정도라 얼굴마담에 불과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노부나가의 야망>에는 ‘천황’이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삼국지는 어떤가. 황건적의 난이 일던 당시에는 ‘영제’가, 십상시의 난 이후에는 ‘헌제’가 분명 한의 제위에 있었고, 비록 동탁 – 조조에게 휘둘리기는 했지만 글자 그대로 허수아비인 일본 천황과는 격이 다르다. 비록 헌제와 동탁, 조조를 모두 등장시킬 경우 낙양이나 허창에서의 주종관계가 애매해진다는 게임 설계상의 어려움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존재 자체를 무시해버릴 정도로 삼국지 안에서 헌제의 위치가 미비하지는 않았다. <삼국지 4> 쯤에서부터 헌제라는 존재가 가끔 상기되고, <삼국지 6>에서는 헌제가 직접 등장해 헌제를 알현하거나 하는 이벤트가 플레이어의 선택에 의해 이뤄질 수 있도록 개선이 되고 있지만, 인기를 모았던 <삼국지 2>때만 해도 헌제라는 존재는 완전히 묵살되고 있었다. 그때는 헌제를 살려주는 이벤트조차 없었으니까.

헌제가 있고 없고가 뭐 그렇게 중요하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점을 한 번 살펴보자. 일본 전국시대의 구도는 상당히 단순하다. 모든 장수들이 천황을 모시고 (정확히 표현하면 천황 따위는 관심도 없고) 대장군이라는 직위에 올라 천하를 호령하기만을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단 한 명도 예외가 없이.
그럼 삼국지는? 어떤 장수는 이번 기회에 한을 멸하고 자신이 새로운 왕조를 세우겠다고 야심을 품고 있고, 어떤 장수는 단지 한의 부흥만을 위해 싸웠다. 어떤 장수는 그저 자기 목숨과 영토나 보존하기를 바랬을 뿐 중원에는 관심조차 없다. 그런데 <삼국지>게임에서는 모든 군주들이
자신이 중국을 통일하여 패권을 잡겠다는 야망을 품고 있다는 가정으로 시나리오가 진행된다. 게임을 만드는데 그게 더 간편할지는 모르지만, <삼국지>가 <대망>과는 차원이 다른 재미를 선사한다는 점에서 <대망>처럼 단순화된 시나리오는 게임의 재미를 떨어뜨린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군주들의 성향을 좀더 다양하게 나눠서, 엔딩을 차별화할 수도 있었을텐데 말이다. 그 점은 <삼국지 6>에서 조금 반영되었다고 하는데 아직까지 게임을 하면서 그 차이를 느껴보지는 못했다.

그럼, 이젠 <삼국지>가 왜 <대망>과는 차원이 다른 재미를 선사한다고 본인이 주장하는지 증명할 차례다. 그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하겠다. 지금은 밤이 깊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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