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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의 제왕] 기다리는 마음

2004년 2월 17일

영화 한 편을 보고 감상을 쓰는데 꼬박 3년이 걸렸다. 정확히 말하면 영화 한 편이 아니라 세 편이라서, 그것도 3년에 나눠서 개봉하다보니 벌어진 일이긴 하지만, 결국은 한 편인(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는다) 영화를 3년간이나 곱씹어 생각하면서 질금질금 볼 기회가 또 있겠는가. (앞으론 없었으면 좋겠다)

<반지의 제왕> 원작을 소설로 제대로 읽은 적은 없었다. 내용은 대략 들어 알고 있었지만, 그 방대한 분량에 질려서 읽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양이 많아서 읽을 엄두가 나지 않은게 아니라, 사거나 빌려보는데 돈쓸 엄두가 나지 않아서였다) 그냥 귀동냥 눈동냥, 그런 정도였기 때문에 <반지의 제왕>의 오랜 매니아들만큼 기대에 차서 개봉을 기다리지도 않았고, 그냥 "색다른 대작영화 하나" 정도의 기대감으로 영화를 접했을 뿐이었다. (소설을 제대로 읽지 않은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처음 1편, <반지원정대>를 다 보았을 때의 느낌은 – 예상은 했지만 – 이제 겨우 시작이로군, 이 정도였다. 절대반지에 대한 각종 탐욕을 열거하며 그 위험성을 경고하지만, 결국 실질적인 위험을 보여준 것은 아무 것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느 인터넷사이트에서 좀 덜떨어진 주제에 잘난척 하는 사람이 ‘절대반지의 힘은 사람의 모습을 감춰주는 정도’라고 썼다가 묵사발이 되는 꼴을 본 적이 있다. 솔직히 영화만 놓고 보면 그 사람이 그렇게 틀린 말 한 것도 없긴 하다) 오히려 반지 자체의 엄청난 마력보다는 반지원정대를 공격하는 나즈굴과 트롤, 발록 등의 존재가 훨씬 위협적이었기 때문에, ‘반지를 가지고 있다는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정도였다. 나처럼 원작을 줄줄 꿰지 못하는 사람에게 <반지원정대>는 조금 호들갑스럽게 느껴진 부분이 없지 않다는 말이다.

1년이 지나서 <두 개의 탑>을 보았다. (참고로 밝혀두는데 나는 앞의 두 편을 모두 극장에서 보지 않고 확장판 DVD가 나온 뒤에야 비로소 보았다) <반지원정대>에서 조금은 지루하게 왜 반지가 사우론의 손에 들어가면 안되는가, 왜 반지가 인간들이나 다른 사람의 손에 있으면 안되고 반드시 없어져야 하는가를 설명하는데 시간을 할애했다면, <두 개의 탑>에서는 그런 기본 설명 생략하고 바로 액션을 발라버렸다. 화면/특수촬영 같은 부분도 <반지원정대> 정도면 충분히 대단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지만 <두 개의 탑>에서는 한층 수준을 높여서 <반지원정대>를 보며 감탄했던 사람들을 무색하게 만들어버렸다. 뭐, 헬름협곡의 전투와 골룸이라는 CG 캐릭터만 놓고봐도 <두 개의 탑>은 충분히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지 않았겠는가.

이렇게 두 편을 본 후에도 나는 <반지의 제왕>이라는 영화에 대한 본격적인 평가를 보류하고 있었다. 앞서도 말했지만 어차피 한 편의 영화라는 기본인식이 있었기 때문에, 다 보지도 않고 중간에 화장실 갔다가 나와버린 후 영화가 어쩌네 저쩌네 하는 것은 말이 안되지 않나. 굳이 말할 게 있다면 지금까지 보여준 화면빨이나 컴퓨터그래픽의 수준 높음 정도지, 그 영화의 큰 흐름이나 주제를 말할 단계는 아니라고 판단했던 거다.

3편인 <왕의 귀환>이 개봉했고 이번엔 직접 극장에 가서 보았다. 흠이라면 흠일 수도 있는 결말부분의 늘어짐은 원작소설에 대한 예우차원이라니까 넘어갈 수 있고, 1~2편까지 극찬을 받았던 화면빨이나 컴퓨터 그래픽은 1편에서 2편으로 넘어갈 때만큼 충격적이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었지만 – 물론 자체만으로는 대단하지만 전작을 본 사람에겐 조금 익숙하게 느껴졌다 – 펠렌노르 전투 장면만 봐도 헬름협곡 전투보다 훨씬 웅장했으니 그런대로 만족할만했다.

오히려 내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그동안 두 편의 영화(그것도 러닝타임 긴 두 편의 영화)에서 흩어놓았던 이야기들을 하나로 통합하여 정리하는 측면에서의 미흡함이었다. 사실 내가 줄창 3편 – 완결편의 개봉을 기다린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는데, <왕의 귀환>은 이미 잔뜩 벌어져버린 이야기들을 효과적으로 수습하는데는 명백하게 실패하고 있었다. 물론 그것이 감독의 역량 부족이나 잘못된 기획의도라거나 하는 문제가 아니라 원작 자체가 워낙 방대하기 때문이라는 점에는 십분 동의한다. (누구 말마따나 한 10부작짜리 미니시리즈로 다시 만들었으면 좋겠다) 1편과 2편에서 러닝타임에 맞추기 위해 대충 뒤로 돌려놓았던 이야기들을 3편에서 해야되고, 또 전반부에서는 그럭저럭 덜어내도 되었을 이야기들이 후반부의 클라이맥스에서는 함부로 덜어낼 수 없는 것들이 되어 러닝타임만 주구장창 늘어나게 되었으니 별 수 있었겠나. (그렇게 길게 갔어도 3시간 30분. 그래도 못다한 이야기가 뻔히 보인다) 다시 말하면 이번에도 전편들처럼 확장판 DVD가 나온 이후에는 그런 부분이 상당히 해소될 가능성도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확장판 DVD가 나오기 전인 지금 시점에서 굳이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바로 그 "확장판 DVD"라는 최근의 시스템에 대한 불평을 하기 위해서다. 언제부턴가 극장 상영을 마친 영화가 DVD로 출시될 때는 확장판이니 디렉터스 컷이니 하면서 극장 개봉 당시에 빠졌던 장면 등등을 추가한 재편집본을 넣는 이상한 유행이 생겼는데, DVD가 아니라 비디오로 출시되던 시절에 비디오테이프 시간과 맞춘다고 아무 이유없이 툭툭 잘라내고 하던 관행이 있었던 것에 비하면 좋아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히 나는 불만을 갖고 있는게 결국은 영화를 이미 본 사람들을 다시 DVD에 손을 뻗게 하는 일종의 상술로 보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니 뭐 상술이라도 좋다. 한번 본 영화 비싼 돈 들여 또 보게 하려면 어느 정도 서비스는 더 추가되어야지. 그런데 예전엔 감독 인터뷰니 배우 인터뷰니 그런 거나, 삭제장면(또는 NG장면) 추가나 그런 정도로 서비스해주더니 왜 이제는 영화를 새로 만들어서 넣느냐 이거다. 내가 솔직히 말하는데 <반지의 제왕> 1편과 2편을 극장에서 보지 않은 이유는 어차피 나중에 확장판 DVD 어쩌구 하면서 극장에서 보지 못한 버전이 새로 나온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미리 봐봤자 돈만 아깝겠더라구.

아마 올 가을쯤으로 예상되는데 <왕의 귀환>도 역시 확장판 DVD가 출시될 거다. (극장개봉판 DVD는 그보다 빠를 거고. 같은 영화를 개봉판과 확장판으로 두 번 팔아먹는 것도 천인공노할 짓 아닌가) 그때 되면 또 뭔가 추가된 장면 없나, 극장개봉판에서는 이런 저런 설명이 좀 부족했는데 그건 좀 편집이 다시 됐나, 이런 궁금증 때문에 또 구해서 봐야된다. 봐야되는데, 짜증난다 이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