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삼례이야기] 배삼례, 쫄았다

삼례는 자신이 무척 온화하고 자애로운 고참이라고 생각할 때가 가끔 있는데 솔직히 꼽창이라고 내놓고 까부는 게 낫지 그런 어설픈 사랑은 받아도 즐겁지가 않다. 한 번은 주말에 할 일이 있어 졸병인 김일병을 내려보내고 나는 농구를 하고 있었는데, 삼례가 나를 부르더니 졸병을 주말에 혼자 고생시키는게 어딨냐며 나보고 내려가라는 거였다. 아니 컴퓨터는 혼자 치는 건데 내가 내려가서 졸병 커피라도 끓여주란 말인가. 새로 온 신병에게 점수를 따겠다는 흑심에다가 내가 노는 꼴을 못보겠다는 심술까지 발동한 모양이었다. 나는 그냥 알겠다고 대답만 하고서 계속 농구를 했다. 이 눈치를 챈 삼례는 이 자식이 고참 말을 무시한다며 자기라도 내려가겠다는 거였다. 그래 너나 가서 고생해라 그러고 계속 농구를 해 시합을 끝냈다. 내무반에 돌아오는데 당직병이 우리 내무반 문 앞에 서있길래 큰 소리로 삼례 내려갔냐고 물었더니 애가 멈칫하면서 내무반을 손가락질하는 거였다. 내무반을 들여다보니 아까 당장 내려갈 것처럼 노발대발하던 삼례가 침상 위에 길게 누워있다가 나와 눈이 딱 마주치자 눈을 슬그머니 돌리는 거였다. 틀림없이 내가 삼례 어쩌구 하는 말도 들었겠지만 그 순간 삼례가 택한 길은 꼬리를 내리는 거였다.

가끔 삼례가 말도 안되는 짓거리를 할라고 내가 일할 때 컴퓨터를 비우라고 요구할 때가 있다. 한창 바쁠 때 그런 식으로 나오면 나도 모르게 말투가 퉁명스러워지거나 눈을 치켜뜨게 되는데, 솔직히 군대에서 고참한테 그럴 수가 있나. 아무리 개떡같은 고참이라도…… 열받은 삼례는 트집을 잡아서 나를 계획계 창고로 끌고가는데 (어느 부대나 창고는 구타의 현장) 우리 창고는 전시에 쓸 삽이나 곡괭이(공병은 전시에 총보다 삽이다)가 많아 구타용구로 쓸 것이 많다. 그럼 삼례는 삽자루 하나 뽑아들고 나한테 일장연설을 하는데 (대개 앞뒤도 안 맞고 자기가 말하다가 말이 꼬여서 옆길로 마구 새버리지만) 그 동안 나는 도끼눈을 뜨고 내 옆에 놓인 곡괭이 자루를 쳐다본다. 아무리 머리나쁜 삼례라지만 내가 곡괭이를 들고 저항하면 당연히 힘에서 딸리는 자기만 박살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결국은 나를 용서(?)하고 돌아나오는게 보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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