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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이야기] 인터넷을 시작하다

2002년 9월 29일
학교 도서관 – 인터넷의 첫발

이때까지도 우리 집 컴퓨터는 386이었기 때문에, 그나마 내가 인터넷을 접할 수 있는 곳은 학교 도서관이나 전산실밖에 없었다. 그런데 공대 전산실은 뭐 도난사고가 났다나 하면서 함부로 개방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나마 도서관에서 도서검색서비스를 하는 컴퓨터가 인터넷을 하기에 좀 괜찮았었다.
처음엔 도서검색을 하기 위해 컴 앞에 앉았다가, “홈페이지 검색”이라는 말에 혹하여 대뜸 쳐넣은 글자가 <건담>이었다. 내 기억으로는 두개의 사이트가 떴었는데, 하나는 건담 이미지만 뜨는 사이트였고 나머지 하나는 이탈리아어로 된 건담 소개 사이트였다. (어느 쪽이건 당시 나에겐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경상대 전산실의 죽돌이가 되다

1997년도. 우리나라 거의 모든 언론매체가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물결에 대해서 거품물고 홍보해주던 시절이었다. 이 당시에 인터넷 모르면 정말 바보였다. 그렇지만 아무리 흐름이 그래도 여건이 안받쳐주면 인터넷을 할 수가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자꾸 강조하게 된다. 모뎀없는 386…) 나의 인터넷 본격 입문은 자꾸 늦어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4학년 1학기 끝날 때쯤… 후배 녀석으로부터 “경상대에 PC실이 생겼는데 (공대 전산실과는 달리) 완전개방이다!”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 오오~ 그런가! 그 날로 바로 후배녀석과 함께 경상대 PC실로 달려갔다. PC들은 펜티엄이 주종이고 486이 몇몇 섞여있었으며, 모든 PC에 윈도우 95가 기본으로 깔려있었고(다시 말하면, 486PC에도 윈95가 깔려있었다는 말이다), 인터넷 전용선이 꽂혀있었고 기본 브라우저로 넷스케이프가 깔려있었다.
일단 “이름만 컴도사”였지 윈도우 95조차 처음 써보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하나하나 새롭게 배우는 기분으로 (기분이 아니라 실제로 거의 새로 배워야 했다) 경상대 전산실에 날마다 출근하기 시작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내 스타일은 독학이다) 안전모드라는 황당한 경험도 해보고, 공포의 파란화면도 체험해보고, “페이지를 찾을 수 없습니다”란 매정한 거절도 당해가며 그렇게 윈도우 95와 인터넷을 공부했다. (당시 졸업작품전도 끝나 학교에 가면 할 일이 없었기에… 거의 점심밥도 안먹고 경상대 PC실에서 살았다)

마이다스 동아일보에 발을 (잘못) 들여놓다!

인터넷을 시작하면서 내가 처음 접속해본 사이트는 물론 야후!였지만 (그때는 야후!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야후!에서 검색하지 않고 내가 주소(URL) 외워서 갈 수 있는 사이트는 몇개 안되었다. 그 중 하나가 동아일보의 인터넷신문인 <마이다스 동아일보>였는데, 그곳의 죽돌이가 된 이유는 단순하게 우리 집에서 동아일보를 봤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동아일보에서 인터넷신문인 <마이다스 동아일보>를 만들면서 독립법인으로 만들어주고 매주 지면의 상당부분을 할애해주는 등 마구마구 밀어줬기 때문에, 솔직히 “뭐가 있길래 이렇게 광고해대는지” 궁금해서 간 측면도 상당했다. 동호회 활동도 한다 그러고, 매일매일 퀴즈도 내서 상품도 받아간다 그러고, 인터넷 여론조사도 한다 그러고, 유머란에 글도 올라오고… 암튼 일반 PC통신에서 하는 기능을 “꽁짜로” 다 할 수 있었으니 밀어줄만 하기는 했다. (요즘은 뭐 그런 개념이 전혀 없어졌지만 그때 나한테 대단했었다)

“min1123″이라는 ID를 만들고 “시대”라는 닉네임을 만들다

인터넷 세상의 또다른 자아라고 할 수 있는 (음.. 이런 거창한 표현을 쓰고나면 꼭 뒷목이 땡긴다) 아이디와 닉네임을 만든 계기는 솔직히 별 거 없었다… 처음 인터넷을 시작할 때, “인터넷(이나 PC통신)을 하려면 자기 아이디가 있어야 되는 거 아닌가?”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렇다. 착각이었다) 내 아이디라는 것에 대해 무지 많은 고민을 했었다. 하지만 결론은 의외로 간단히 내려버렸는데, <퇴마록>을 읽다가 저자 이우혁에 대한 소개부분에서 “XXXX년 5월 18일 서울 출생, 아이디 hyouk518” 이라고 나온 걸 보고 어? 이름 끝자에다 생일 붙였네? 나도 그렇게 해보까? min1123이네? 이렇게 지어버렸던 것이다. (진짜다)
그런데 아이디만 만들었지 실제 인터넷에서 아이디를 써먹을 일이 없었다. 회원 가입하라구 그러면 무조건 안했으니까… 그러다가 <마이다스 동아일보>에서 “차기 대통령으로 누구를 지지하십니까?”라는 인터넷 설문을 회원 대상으로 했었는데, 거기다가 김대중이한테 한표 던지려고 동아일보에 가입하면서 처음으로 min1123이라는 아이디를 사용했던 것이다.
“시대”라는 닉을 쓰게 된 경위는 더 단순하다. <마이다스 동아일보>의 유머란에 간단한 유머를 하나 올렸었는데, 로그인을 할 필요는 없었는데 이름을 넣어야했다. 본명을 넣기도 그렇고, 아이디를 넣기도 좀 그렇고, 유머란의 대세를 따라 “우낀넘” “황당이” “배꼽없는넘” 같은 격조없는(?) 이름을 넣기도 그랬다. 간혹 유머란이나 토론장을 보면 “햇살” “김삿갓” “오렌지” 같은 특징적인 닉네임을 쓰면서 자신의 존재를 나름대로 부각시키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렇게 “나를 구별해줄 수 있는” 이름을 하나 넣고 싶었던 거다. (유머 하나 올리면서 참 별…) 그순간 팍 떠오른게 재수없게도 “시대”였다. 처음엔 “시립대에서…”라고 쓰려고 했는데 거 너무 길다 싶었고, “시립대”라고 줄이려다보니 문득 내가 근무했던 부대에서 “시설대”를 줄여 “시대”라고 불렀고 우리 학교도 “시대”라고 줄여서 쓴다는 사실이 퍼뜩 떠올라버렸던 것이다. 그때 처음 “시대”라는 이름을 쓴 이후 지금껏 온라인에서는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