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이야기] XT로 되돌아가기 / 프로그래밍

군대에서… 꼬이다!

공군 입대후, 자대 배치를 받고 단본부 내무반에서 대기하고 있는데 왠 넘이 나를 불렀다. 쭐레쭐레 따라가보니 미래의 (불과 하루이틀 후의 미래였지만) 내 고참들이 짝다리 짚고 서있었다. (참고로 이때 실실 쪼개는 바람에 나는 병장 다는 그날까지 군생활 무척 고롭게 보냈다) 둥글둥글하게 생긴 사람이 (그당시는 몰랐지만 행정계 최고참이었다) 나보고 글씨 잘쓰냐고 물어봤고, 안경쓰고 순해보이는 사람이 (그당시는 몰랐지만 계획계 최고참이었다) 컴퓨터 다룰 줄 아냐고 물어봤다. 글씨는 그럭저럭 쓰고 (원래 글씨가 개발새발은 아니었는데 컴퓨터를 쓴 이후 워낙 펜글씨를 안쓰다보니 요즘은 글씨 쓰면 개발새발이다) 컴퓨터는 잘한다고 그랬더니 두사람의 희비가 엇갈리기 시작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때까지 행정계에는 펜글씨와 타자기가 주종이었고, 일종의 작전부서인 계획계에는 대우프로XT 컴퓨터가 한 대 놓여있었던 것이었다. 나의 “컴퓨터를 다룬다”는 말 한마디로 내 군생활은 결정지어져버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글씨 잘쓴다고 했으면 김X관이 밑이었을 것이고 컴퓨터 잘한다고 했으면 배삼례 밑이고… 정말 시설대 최악의 고참 둘을 놓고 저울질을 한 셈이니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XT를 정복하라!

사회에서 386에 총천연색 모니터, 데스크젯 프린터를 쓰던 나는, 까라면 까야되는 군대에서 천하장사(=Hercules) 모니터에 XT 컴퓨터, 도트 프린터를 다시 배워야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더욱 나를 난감하게 만들었던 것은 사회에서 잘 써오던 아래한글은 여기서 안쓰고, 대우 프로워드라는 듣도보도 못한 워드프로세서를 새롭게 배워야했다는 점이었다. 이제는 너무나 보편화되어 굳이 설명을 달 필요도 없는 WYSIWYG(위지윅;What You See Is What You Get의 준말로 화면에서 보이는 그대로 프린트된다는 말) 기능이 빠져있는 프로워드는, 다시 말하자면 HTML 태그처럼 문자 앞뒤로 태그를 막 달아서 장식을 하고 프린터로 뽑아봐야 내가 태그를 제대로 넣었는지 안넣었는지 알 수 있는 아주 환장할 프로그램이었다. (왕년에 날리던 워드 “보석글”도 같은 종류의 프로그램이고, 국산최초의 위지윅 워드는 아래한글인 것으로 알고있다. 최초는 아니고 그냥 가장 보편화된 위지윅기능의 워드프로세서였는지도 모르지만)
어쨌거나 하향평준화(?)를 위해 나는 직속고참 배삼례에게 되먹지도 않은 프로워드 강의를 들어야했고, 당연히 배삼례에게 설명듣고 헷갈리는 부분을 책보고 독학으로 깨치는 시간낭비 끝에 프로워드도 마스터해냈다. 자랑하는 거 같다고? 군대에서 그렇게 하지 못하면 살아남기 힘들다.

C에 흥미를 느끼다

정확히 말하면 내 보직은 소요계획계 서기병으로, 구시대적으로 설명하자면 공문서를 펜글씨로 깔끔하게 작성하는 것이 주임무라고 할 수 있었다. (내가 이병 때가 1993년이었는데 1991년 문서를 봐도 손으로 직접 쓴 공문이 많이 있었다… 근데 정말 글씨 이쁘게 잘 써놓았다) 시대가 변해서 무기가 펜에서 컴퓨터로 바뀌었으니 이제는 컴퓨터를 붙잡고 사는 것이 내 임무라고 할 수 있는데, 솔직히 워드 칠 일이 그렇게 쏟아지는 것도 아니고… 또 직업적 특성상 밥먹듯 야근을 하긴 하지만 간부들이 연필로 초안 써줄 때까지 딩가딩가 노는 것이 일이다보니… XT 컴퓨터나마 뭔가 발전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기 시작했다. 그 돌파구가 배삼례가 한창 미쳐있던 C라는 프로그램이었다.

C로 짜본 첫 프로그램

일단 삼례에게 알랑방구를 뀌어가며 C 책을 하나 빌린 뒤, 이놈이나 저놈이나 베이직과 무슨 차이가 있겠냐며 무턱대고 달려들었다. 그런데 차이가 엄청나게 많았다. (특히 나를 끝내 좌절시켜버린 포인터… 죽여버릴 포인터) 상병을 달게 된 후 내무반 당직을 설 때마다 책을 달달달 읽어댔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베이직과는 달랐다. 아무래도 안되겠다. 직접 뚜드려보면서 해봐야지. 그 무렵 삼례가 제대했고 사무실 컴퓨터도 난데없는 펜티엄급으로 업그레이드가 되어버렸다. 오오! 이제는 사회에서 쓰던 컴퓨터보다 좋은 환경에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군!!! 나는 휴가 나왔을 때 학교 전산실에서 Turbo-C를 디스켓에 카피해다가 부대로 밀반입, (이 과정에서 기무부대에 걸려 죽는 줄 알았다) 사무실 PC에 장착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이것저것 두드려보며 마침내 내가 만들어낸 첫 작품은… 세자리 숫자를 불러서 원스트라이크 투볼, 이런 식으로 숫자를 맞춰가는 “숫자야구게임”이었다.

게임을 한번 짜볼까?

결국은 실패로 끝났지만, 뭘하던 노는 것밖에 생각하지 않는 내가 프로그래밍을 배워서 뭐에 써먹겠는가. 그저 노는 거지. 그리하여 나는 게임 프로그래밍의 세계에 발을 한번 내딛어봤다. (지금 생각해보니 애플을 쓰던 당시 포트리스 유사게임 소스를 갖고 있었고, 그걸 베이직으로 컨버전하는데까지 성공했었는데, 거기에 주구장창 매진했으면 포트리스가 지금 내 것일지도 모른다는 얼토당토 않은 생각은 아주가끔씩 하곤 한다. 부끄럽다) 한번 내딛어봤다는 말은 지금은 거의 발뗐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꽤 비싼 돈 주고 게임프로그래밍에 대한 책을 구입하기도 했지만 결국 아무 것도 해내지 못했다. 게을러서? 아마도-

윈도우 프로그래밍에 흥미를 느끼다

집에서 쓰는 PC보다 빵빵해진 사무실 PC를 보며, 쌓여가는 짬밥을 주체하지 못하고 남아도는 시간을 어쩔 줄을 몰라하던 시절, 나는 드디어 “윈도우 프로그래밍”이라는 험난한 세상에 첫발을 내딛었다. 그때까지 윈도우 3.0(정확힘 말하면 그 당시는 한글윈도우 3.1이 최신형이었다)은 솔직히 “악세사리” 수준이기도 했지만,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정책적으로 밀어붙이고 있으니 언젠간 윈도우 환경으로 넘어갈 것이라는 점 또한 자명했다. 특히 그 당시 세상을 시끄럽게 하던 윈도우 시카고(기억나시는가… 윈도우 95의 개발 당시 별명이다)가 곧 나온다 곧 나온다 하던 때였기에… 방향으로 그 쪽으로 잡아야된다는 쪽에 초점을 제대로 맞춰놓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게임쪽이었다) <윈도우즈 게임 프로그래밍>이라는 책을 사놓고, 부대 전산실에 잠입해 (참, 능력도 좋다) 볼랜드 C++ 프로그램을 (디스켓 여러장 필요했다) 카피해다가 사무실 PC에 장착시키는데 역시 성공하고야 말았다. 내가 손댄 게임은 삼국지… 그때까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삼국지는 아직 윈도우용 버전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최초로 삼국지 윈도우 버전을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성공했냐고? 성공했으면 내가 지금 왜 이러고 있겠나? 그때 고생고생해서 만들어낸 건 고작 도움말 파일이었고(확장자 HLP) 그 많은 내용을 전부 워드로 치다보니 결국 워드실력만 무지하게 늘어나고 말았다.

윈도우 95를 외면하다

내가 제대 준비를 하던 무렵, 드디어 윈도우 시카고(이때부턴 윈도우 95다)의 실체가 만천하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당시 소문이 잘못 전해져 우리 부대 군인들은 “이제 컴퓨터를 고생해서 배울 필요가 없다”라며 좋아하고 있었다. (정말 그랬다면 지금 우리 회사에 널려있는 컴맹들은 다 뭐란 말인가?) 어쨌든 윈도우 95 출시와 거의 동시에 나는 제대를 했고, 사회에 복귀한 나를 반겨준 것은 구닥다리 386 컴퓨터였다. 군대에서도 펜티엄을 썼는데…라는 쫀심이 치고 올라왔지만 자금이라는 현실과 어쩔 수 없이 타협하고, 다시 386의 스피드(?)에 적응과정을 거치기 시작했다. 뭐, 워드 치기는 좋았으니.
상황이 이렇다보니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있는 윈도우 95도 “구해서 깔아봐야지”라는 생각을 요만큼도 할 수가 없었다. 386칩에 8메가짜리 컴퓨터 죽일 일 있나? 사운드카드도 없고, 모뎀도 없어 통신도 할 수 없는 워드프로세서 전용 386PC를 붙들고 그렇게 2년여를 더 버텨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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