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이야기] 백화점 전산실 알바 시절

업무상 엑셀을 배우다

그후 아버지 소개로 모백화점 전산실에 알바로 들어가게 됐다. 뭐 기본적인 알바의 업무라는 거야 잔심부름 수준이거나 전화 받아주는 (전산실 대표전화가 내 직통전화였다… 그때부터 전화 무지하게 많이 받았다)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참으로 이해가 안갔던 일을 다른 곳도 아닌 이 ‘전산실’이라는 곳에 맞닥뜨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때까지는 내가 주위 사람들한테서 “컴퓨터 잘한다”는 말을 듣는 편이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컴퓨터 비전공자들이 주변에 우글우글했기 때문이었지 정말 전산쟁이들이 득시글거리는 전산실에서는 절대 그런 소리 못들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이렇게 써놓으니 뭐 전산실에서도 내가 컴퓨터 잘한다는 소리 좀 듣고 그랬다는 말처럼 들리는데 그건 아니고, 우선 한글 타자를 나보다 빨리 치는 사람은 없었다. 군대에서 워드병으로 날렸던 가닥이 남아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물론 전산실의 전산쟁이들이 영타는 나보다 빨랐지만 한글타자를 잘 치는 사람은 없었다. 다음으로 HTML을 나보다 많이 아는 사람이 드물었다. 드물었다는 말은 그 백화점도 인터넷 시대를 맞아 인터넷쇼핑몰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그 쇼핑몰에 관계된 사람들을 빼고는 HTML에 대해서 잘 모르더라는 말이다. 오죽하면 당시 백화점 사장의 개인홈페이지를 만드는데 데모용 페이지를 내가 만들었겠나. (다른 잘 만드는 사람들은 바쁘다고 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
뭐 그런 사소한 것들에서 자신감을 얻었던 측면도 있긴 하지만 나머지는 쌩 다 배워야 되는 것들이었다. 특히나 처음 전산실에 가서 배워야했던 것은, 그때까지 “계산용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했던 엑셀을 이곳에서는 워드처럼 쓴다는 놀라운 사실이었다. 군대에서 시방서 만드는데 쓰거나 회계용 프로그램으로 써보기도 했고 (그때는 엑셀이 아니고 하나스프레드시트였다) 복학해서도 엑셀을 사용해서 과제를 제출한 적도 있긴 했지만, 다들 표가 들어가고 계산식이 들어가는 그런 종류의 문서들이었는데 여기서는 그냥 글자만 있는 문서들도 다 엑셀로만 작업하고 있었다. 워드는 빨리 치지만 엑셀 편집기능이 떨어져서 문서 작업이 늦어질 수는 없었으므로 줄기차게 배웠다. 뭐 가르쳐주는 사람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그냥 이리저리 혼자 들쑤셔보면서 배우는게 다였지만.

네트워크 관리와 랜선 따는 법을 배우다

전산실의 대민(?) 주요업무 중 하나가 사무실 자리를 옮길 때 랜선을 다시 깔아주는 것이었다. 무슨 놈의 회사가 돈벌 궁리는 안하고 사무실 레이아웃만 맨날 옮기는지 – 대기업이다보니 순환보직 개념이 좀 있어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 한 달에 한 번 꼴로 랜공사를 다시 해줬던 것 같다. 처음에는 내가 아는 것도 없었기 때문에 그냥 바닥에 깔란 선들 수습하고 (꼬인 선들 푸는게 얼마나 짜증나는지 아는가) 배치 다 끝나면 랜선을 랜카드에 꼽아주는 정도였는데, 자꾸 하다보니 (그리고 직원들도 그런 잡일에 나를 써먹는게 편하고 하니) 아 이 랜선들이 요 허브에서 출발해서 이렇게 이렇게 나뉘는구나, 이렇게 시스템을 대략이나마 이해하게 되었더랬다. 그리고 랜선을 길이마다 끊어서 양끝에 꼬다리(우리끼리는 꼬다리라고 불렀는데 공식명칭은 STP 커넥터다) 끼운 뒤 이상없나 테스트하는 방법도 배워서, 나중에는 어지간한 곳은 그냥 내가 알아서 랜선 끊어다가 작업해주고 하는 일도 많아졌다. (랜공사 출장까지 갔었으니까) 간혹 사무실이 대이동을 할 때면 서너 명이 달라붙어서 랜선을 따는 일도 있었는데, 모든 일이 그렇지만 하다보면 경쟁이 붙는 법이 아니겠는가. 서툴 때는 선도 막 꼬이고 잘못 끼워서 에러나고 (에러나면 이 꼬다리가 라면 한 봉지 값인데 아까와서 어쩌냐고 한소리 듣고) 그랬지만 나중에는 선 따는 것부터 착착 꼬아서 꼬다리 끼우고 집게로 찝는 것까지 일사천리로 해치우곤 했다. 지금도 하라면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손 놓은지가 너무 오래되긴 했다.

전산실 알바쟁이의 하루

주위에서 ‘컴퓨터 좀 한다’는 소리를 들었어도 어디까지나 User의 입장이었을 뿐이었는데, 전산실에서 1년 정도 구르면서 User 이상의 노하우를 많이 쌓았던 점은 참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 네트워크나 랜에 대해서는 정말 아무 것도 몰랐는데 – 사무실에서는 여러 사람이 프린터 한 대를 공유해서 쓴다는 것도 몰랐다 – 배운 것도 그렇고, 컴퓨터 자체에 대해서도 그냥 나 혼자 쓰면서 배우고 알던 것보다 훨씬 많은 사건/사고(?)를 접할 수도 있었다. 일단 백화점 여직원들의 대다수가 컴맹이다보니 – 여직원들만 컴맹이냐, 그렇지는 않지만 – 컴퓨터에 무슨 이상만 생기면 전산실에 전화를 해대는데 그걸 대비해서 전산실에는 파견직원 한 명이 상주하고 있었다. (장 모씨와 최 모씨, 갑자기 생각나네) 그러나 워낙 이 직원이 인기가 높다보니 혼자서 그 많은 사고(?)들을 다 처리못했기 때문에 전산실 막내 군번(?)인 내가 출동해야하는 일도 많았다. (이게 악용하기도 좋았던 게, 사무실 한참 비우고 어디서 놀다가 들어가서 컴퓨터 고쳐주다가 왔다고 하면 별로 의심도 안했다) 아까 여직원들 이야기를 한 것은 높으신 분들은 일단 컴퓨터 잘 쓰지도 않으시고 고장나도 고장인지 아닌지 잘 모르시며-_- 가까운 곳에 있는 부하직원보고 고쳐보라고는 해도 굳이 전산실에 전화까지 하는 수고로움은 별로 하지 않으시는데, 여직원들은 컴퓨터 끼고 살다가 이게 고장나면 난리가 아닌거라. 그래서 전화해서 빨랑 와달라고 하다가 바쁘니까 좀 있다가 간다고 하면 오빠오빠 콧소리까지 내고… 전성기였지 그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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